최형우 전 장관 영결식 총정리|김민석·장동혁 헌화, 김영삼 오른팔의 마지막 길과 국립4·19민주묘지
최형우 전 장관 영결식은 2026년 10월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으며,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공동장례위원장으로 참석했습니다. 고인은 24일 향년 91세로 별세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6선 국회의원으로, 장지는 국립4·19민주묘지입니다.
27일 더팩트 사진 보도에는 여야 대표가 고인을 추모하는 장면이 담겼고, 다른 사진 보도에서는 한동훈 의원과 김무성 전 대표의 참석도 확인됐습니다. 그날 누가 참석했는지, 영결식과 발인 시각은 어떻게 구별하는지, 고인은 왜 ‘YS의 오른팔’로 불렸는지까지 자료를 모아 정리했습니다.
현장 사진뿐 아니라 생전 정치 활동을 기록한 과거 사진을 시간 순서에 맞게 배치했습니다. 영결식 현장과 과거 자료사진의 촬영 시점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전제로 고인의 삶을 살펴봅니다.
- 별세: 2026년 10월 24일, 향년 91세
- 영결식: 10월 27일 오전 9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 여야 공동장례위원장: 김민석·장동혁 대표
- 현장 사진: 두 대표의 헌화·묵념·악수 장면
- 주요 참석 보도: 한동훈 의원·김무성 전 대표 등
- 고인의 경력: 김영삼 상도동계 핵심, 6선 국회의원, 전 내무부 장관
- 장지: 국립4·19민주묘지
- 사진: 영결식 당일 현장 및 고인의 생전 관련 기록 사진 포함
1. 최형우 전 장관 영결식, 10월 27일 현장 핵심 정리

2026년 10월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고(故)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의 영결식이 거행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민주화운동의 거친 시기를 함께한 원로 정치인의 마지막 길을 여야 정치인과 유족, 정치적 동지들이 함께 배웅했다.

이날 특히 눈길을 끈 장면은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같은 자리에 앉아 고인을 추모하고 헌화하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고, 관련 사진 보도를 통해 영결식 중 악수와 묵념 장면도 공개됐다.

오늘의 핵심 검색 질문은 세 가지다. 두 대표가 왜 함께 장례를 맡았는지, 최형우 전 장관이 한국 정치사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 발인과 영결식 그리고 국립4·19민주묘지 안장 일정은 어떻게 이어지는지다. 이번 글은 영결식 현장의 사실부터 생전 주요 경력까지 날짜별로 정리한다.
2. 최형우 영결식 시간·장소와 발인 일정 구분

영결식 장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영결식장이었다. 10월 27일 여야 정당 공식 일정에 해당 행사는 오전 9시로 공지됐다. 사진 기사 역시 27일 오전 영결식이 진행된 사실을 확인해 준다.

초기 장례위원회 안내에는 발인 시간을 오전 7시로 적은 보도가 있다. 하지만 발인 절차와 추도 발언이 포함된 영결식의 실제 일정은 같은 표현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 26일 연합뉴스는 27일 오전 9시 영결식을 안내했고 여야 대표 당일 일정도 9시로 표기했다.
장례식장에서의 영결식 이후 성남의 화장 시설을 거쳐 오후 3시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안장식을 진행한다는 계획이 전날 공개됐다. 여기서 오후 3시는 사전 안내된 안장식 시각이며, 안장 의식 종료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 일정 | 내용 | 시각·장소 |
|---|---|---|
| 10월 24일 | 별세 | 오전 3시 30분, 중앙보훈병원 |
| 10월 25~26일 | 빈소 조문 |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
| 10월 27일 | 영결식 | 오전 9시, 삼성서울병원 지하 1층 |
| 10월 27일 | 화장 절차 | 성남시장례문화사업소 예정 |
| 10월 27일 | 안장식 | 오후 3시, 국립4·19민주묘지 예정 |
3. 김민석·장동혁 여야 대표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이유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두 당의 대표가 한 인물의 공동장례위원장으로 나란히 이름을 올린 것은 고인의 이력이 한 정당의 경계를 넘어선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최형우 전 장관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도운 상도동계 핵심 인사로 알려졌지만, 민주화운동기에는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공통의 목표로 움직이던 시기가 있었다.

실무적으로는 대한민국헌정회와 민주화추진협의회 및 4·19 관련 단체가 장례를 주관했고, 정대철·권노갑·김덕룡 등 정치 원로가 주요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김민석과 장동혁은 그와 구분되는 공동장례위원장으로 참여한 것이다.

25일 먼저 빈소를 찾은 김민석 대표는 민주화의 뿌리를 이어가기 위해 여야를 넘어 성찰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장동혁 대표도 고인의 뜻을 받들어 국민을 웃게 하는 좋은 정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취지로 추모했다. 두 메시지 모두 장례 현장에 걸맞은 애도의 표현이었다.
| 구분 | 이름·기관 | 역할 |
|---|---|---|
| 장례위원장 | 정대철·권노갑·김덕룡 | 고인을 기리는 장례위원회 주도 |
| 공동장례위원장 | 김민석·장동혁 | 여야 대표 공동 참여 |
| 장례 주관 | 헌정회·4·19 관련 단체·민추협 | 의정·민주화운동 이력 기림 |
4. 영결식 사진 속 헌화·묵념·악수 장면은 무엇을 보여줬나

27일 보도된 현장 사진에는 김민석 대표와 장동혁 대표가 함께 헌화하고, 나란히 묵념하는 모습이 담겼다. 다른 사진에서는 두 대표가 악수하는 장면도 확인됐다. 이는 단지 같은 시각에 장례식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넘어 고인의 마지막 의식에 공동 책임을 지고 참여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영결식장의 악수를 특정한 정치 현안에 관한 합의로 확대 해석할 근거는 없다. 추모 공간에서 주고받은 예의와 국회에서 이어지는 정책 갈등은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현장 사진 자체가 보여주는 것은 애도와 의례의 순간이다.

이날 사진을 볼 때는 행사 당일의 장면인지, 24일부터 26일 사이 빈소 조문 때 촬영된 사진인지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인의 과거 활동 사진도 함께 검색되는데, 1990년대 행사나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식 사진을 2026년 영결식 현장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5. 한동훈·김무성 등 영결식 참석 인물

이날 현장에서 여야 대표 외에 한동훈 무소속 의원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모습도 포착됐다. 뉴스핌 사진 보도에는 김무성 전 대표와 한동훈 의원이 영결식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실렸으며, 별도 보도에는 김민석·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의원이 함께 묵념하는 장면이 공개됐다.

고인의 정치적 인연은 현재의 정당 소속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김무성 전 대표 등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상도동계 정치 활동의 역사에 연결된 인물이다. 세대를 넘어 추모 인사가 모인 이유도 이러한 오랜 정치적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 기사에 등장한 모든 인물이 공식적으로 추도사를 낭독한 것은 아니다. 사진에 등장했다는 사실과 조사를 맡았다는 사실은 서로 다르며, 행사 전체 참석 명단이나 개인별 추도 발언을 추정해서 나열하는 것은 피할 필요가 있다.
6. 대한민국헌정회장과 4·19 관련 단체 장례가 지닌 의미

이번 장례는 대한민국헌정회장과 4·19 관련 단체 및 민주화추진협의회가 함께 참여하는 형식으로 알려졌다. 고인이 국회의원 경력과 민주화운동 경험을 모두 지녔다는 점을 반영한 구성이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았다는 안내가 나왔다. 여야 현직 대표는 공동장례위원장으로서 이들과 함께 고인의 정치적 발자취를 기렸다.
일부 보도는 단체 명칭을 4·19혁명동지회, 다른 장례위원회 안내는 4·19혁명공로자회로 적고 있다. 세부 명칭 표기 차이는 있지만 4·19혁명에 참여했던 고인의 생애를 기리는 공동 추모라는 취지는 일치한다.
7.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이어진 빈소 조문 행렬

최형우 전 장관의 별세가 알려진 24일부터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추모 인사가 이어졌다. 25일에는 김민석·장동혁 대표가 각각 조문했고, 오세훈 서울시장, 김부겸·이낙연 전 국무총리,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등의 방문 소식도 전해졌다.

26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등 원로 정치인들이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고인이 하늘나라에서는 편안하게 지내길 바란다는 뜻의 추모 발언을 남겼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여러 정치적 노선을 걸어온 사람들이 같은 빈소에 모였다는 사실은 생전에 쌓인 인연의 폭을 보여준다. 다만 방문한 모든 사람이 27일 영결식에도 참석했다는 뜻은 아니다. 조문 날짜와 영결식 참석 날짜를 나누어 확인하면 서로 다른 현장 사진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 날짜 | 주요 상황 |
|---|---|
| 10월 24일 | 최형우 전 장관 별세, 빈소 마련 및 조문 시작 |
| 10월 25일 | 김민석·장동혁 대표, 김현철 이사장 등 조문 |
| 10월 26일 | 이명박 전 대통령, 권노갑 이사장 등 방문 |
| 10월 27일 | 여야 대표 공동장례위원장 영결식 참석 |
8. 김민석·장동혁의 조문 발언과 고인을 향한 평가

김민석 대표는 25일 조문 이후 최 전 장관이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고 부마항쟁 및 5·18 정신을 살리려 노력한 정치인이라는 취지로 평가했다. 고인의 빈소에서 정치 진영을 넘어 민주화의 공통 뿌리를 되새겨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장동혁 대표는 고인이 정치인과 장관으로서 활동하며 민주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그 뜻을 이어 국민을 웃게 하는 정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김현철 이사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최 전 장관이 독재 정권 아래서 함께 겪은 어려움을 회고했다. 이처럼 조문객들의 발언은 단순한 직함 소개를 넘어 고인이 민주화운동 동지이자 정치적 조직가로 기억되는 이유를 보여준다.
9.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오른팔, 좌동영 우형우란 뜻

최형우 전 장관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 가운데서도 현장 조직력과 정치적 추진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았다. 당시 김동영 전 정무제1장관과 함께 ‘좌동영 우형우’라는 표현이 널리 쓰였다. 이는 김영삼의 주변에서 두 정치인이 각각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뜻이다.

‘상도동계’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활동 기반인 서울 상도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 그룹을 일컫는다. 과거의 여러 민주화 조직과 야권 세력이 겹쳐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정당 구도만으로 완벽히 치환하기는 어렵다.

고인이 떠난 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 인사들이 함께 장례를 준비한 것은 이런 역사와 연결된다. 두 세력은 과거 경쟁하거나 다른 노선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권위주의 시대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다는 공통 기억을 지녔다.
10.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나이·고향·학력·프로필

고인은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나 2026년 10월 24일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부산공업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정치 경력은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시작해 모두 여섯 차례 국회의원직을 맡은 것으로 정리된다.

1960년 4·19혁명 시기 동국대 학생 대표로 참여한 경험은 이후 민주화운동에 나서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됐다. 단순히 문민정부의 장관을 지낸 정치인으로만 기억하기보다 그 전 수십 년에 걸친 야당 및 민주화운동 경력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별세를 알린 보도에는 1997년 뇌졸중 이후 오랫동안 투병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렇다고 1997년의 질환을 2026년 별세의 직접 사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장기간 건강 상태에 관한 보도와 사망 원인의 의학적 확정은 다른 문제다.

| 항목 | 확인된 내용 |
|---|---|
| 이름 | 최형우(崔炯佑) |
| 출생 | 1935년, 울산 |
| 학력 | 부산공고,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 별세 | 2026년 10월 24일, 향년 91세 |
| 정치경력 | 제8·9·10·13·14·15대 국회의원, 내무부 장관 |
| 주요 인연 | 김영삼 전 대통령, 상도동계 |
11. 1960년 4·19혁명 참여와 민주화운동 활동

최형우 전 장관의 정치적 뿌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4·19혁명이다. 1960년 동국대 학생 대표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훗날 야당 정치인으로 걸어온 삶과 이어진다.

1980년 신군부 집권 이후에는 의원직을 잃고 군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이후 1981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만든 민주산악회에서 활동했고,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을 맡았다.

민주화운동 경력을 살펴보면 정당 조직 운영, 시민 저항, 정치인 간 연대가 서로 연결돼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번 장례에서 4·19 관련 단체와 민주화추진협의회가 함께 언급되는 이유는 바로 이 경력의 연속성에 있다.


12. 1971년 첫 당선부터 6선 국회의원까지

고인은 1971년 제8대 총선에서 신민당 소속으로 울산·울주 지역구에 출마해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제9·10·13·14·15대 국회의원을 거쳐 6선 국회의원으로 이름을 남겼다.

여섯 번의 당선은 단순히 같은 지역에서 연속으로 여섯 차례 선출됐다는 뜻이 아니다. 제10대와 제13대 사이에 공백기가 있었고, 이는 1980년대 정치적 격변 및 신군부 통제 속에 야권 정치가 겪은 역사를 반영한다.
정치인에게 ‘6선’이라는 숫자는 의정 경험을 보여주는 지표이지만, 최형우의 경우 그 의미를 이해하려면 민주화운동 및 당 조직 활동과 연결해서 읽는 편이 정확하다.
| 시기·구분 | 최형우 전 장관의 경력 |
|---|---|
| 1971년 | 제8대 국회의원 초선(울산·울주 지역) |
| 제9·10대 | 국회의원 재선·3선 |
| 1980년대 | 민주화운동, 이후 의정활동 복귀 |
| 제13·14·15대 | 국회의원 4·5·6선 |
| 1990년대 | 정무제1장관·민자당 사무총장·내무부 장관 |
13. 1990년 3당 합당과 문민정부 내무부 장관 경력

1990년 3당 합당을 거쳐 민주자유당에 합류한 고인은 이후 정무제1장관을 지냈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1993년에는 민주자유당 사무총장을 맡았고, 같은 해 말 내무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내무부는 당시 지방행정과 치안 등 국가 행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부처로, 지금의 행정안전부와 동일한 조직이거나 소관 업무가 완전히 일치한다고 단순화하면 안 된다. 고인이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는 사실은 당시의 정부 조직과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민주화운동 시기 야당 정치인의 활동이 문민정부 출범 이후 국정 운영의 핵심 직책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그의 이력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다만 모든 개혁 정책을 개인의 성과로 돌리는 것은 정확하지 않으므로 해당 정책의 실제 담당 기관과 시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14. 1997년 뇌졸중과 이후 생애에 관한 보도

1990년대 후반 최형우 전 장관은 여권의 대선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이후 오랜 기간 투병했고, 정치 활동에서도 멀어지게 됐다는 내용이 주요 부고 기사에 담겼다.

이 때문에 고인의 공직 경력 중 마지막 시기에 해당하는 내용은 민주자유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 등 문민정부 초기 이력에 집중돼 있다. 동시에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 때 조문하는 모습이나 2026년 김영삼민주센터 관련 사진을 통해 생전의 모습이 기록돼 있다.
건강과 관련해서는 기사마다 사용하는 표현이 다를 수 있다. ‘오랜 투병’이라는 설명은 언론 보도의 범위 내에서 전할 수 있지만, 구체적 진단이나 직접 사망원인을 새롭게 추정해서 쓰는 것은 사실과 다를 위험이 있다.
15. 국립4·19민주묘지 장지와 안장식이 갖는 뜻

고인의 장지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국립4·19민주묘지다. 10월 26일 공개된 장례 일정에 따르면 27일 영결식과 화장 절차를 거친 뒤 오후 3시 안장식이 예정돼 있었다.

국립4·19민주묘지는 4·19혁명의 정신을 기리는 대표적인 국가 추모 공간이다. 대학생 시절 4·19혁명에 참여했던 최 전 장관이 이곳에 안장되는 것은 고인의 민주화 이력을 돌아보게 한다.

영결식이 열린 삼성서울병원과 화장 시설, 최종 장지는 같은 장소가 아니다. 검색창에서 ‘최형우 전 장관 영결식 장소’를 찾는다면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최형우 장지’를 찾는다면 국립4·19민주묘지가 정답이다.


16. 상도동계·동교동계 인연이 오늘 장례에 남긴 의미

김영삼 계열의 상도동과 김대중 계열의 동교동은 오랜 세월 민주화운동에서 협력과 경쟁을 함께 경험했다. 최형우의 장례에서 권노갑, 김덕룡, 정대철과 여야 현직 대표가 함께 이름을 올린 모습을 보면 이러한 정치사의 연결고리를 읽을 수 있다.

25일 고인의 빈소를 찾은 정치 원로들 사이에서는 과거의 정치가 지금보다 인간적인 관계와 타협의 여지가 있었다는 취지의 회고도 나왔다. 이는 각 인사가 과거를 해석하는 평가이며 현재 정치에 대해 모두가 같은 견해를 갖는다는 뜻은 아니다.
독자가 이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정치권의 예법과 역사적 추모가 당장의 정당 대립과 별도로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결식의 사진 한 장이 정치적 화해를 완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여러 정당에 걸쳐 있음을 드러낸다.

17. 최형우 전 장관 영결식 자주 묻는 질문 TOP 5

Q1. 최형우 전 장관 영결식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요? 2026년 10월 27일 오전 9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영결식장에서 열렸습니다.
Q2. 김민석·장동혁 대표가 함께 참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 대표가 고인의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장례에는 대한민국헌정회와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도 참여했습니다.
Q3. 한동훈 의원도 영결식에 왔나요? 네. 27일 행사에서 한동훈 의원이 김무성 전 대표와 대화하고 여야 대표와 함께 묵념하는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Q4.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은 몇 살에 별세했나요? 1935년생으로 2026년 10월 24일 향년 91세로 별세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6선 국회의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Q5. 장지는 어디인가요? 국립4·19민주묘지입니다. 27일 오후 3시 안장식이 예정됐다는 장례 일정이 전날 공개됐습니다.
18. 결론: 최형우 전 장관 영결식이 남긴 정치적 장면

2026년 10월 27일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영결식은 한 정치 원로와의 작별을 넘어, 4·19혁명에서 상도동계와 문민정부에 이르는 한국 현대 정치사를 다시 떠올리게 한 자리였다. 고인은 1935년 태어나 민주화운동과 의정활동을 거쳐 6선 국회의원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김민석·장동혁 두 대표가 공동장례위원장으로 헌화하고, 한동훈 의원과 김무성 전 대표 등이 행사장에 참석한 장면은 오랜 민주화운동의 인연이 현재 정치권에도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다만 장례식장에서 나눈 악수만으로 향후 정당 간 협력이나 정치적 합의를 예단해서는 안 된다.
영결식 장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장지는 국립4·19민주묘지, 별세 날짜는 10월 24일, 향년 91세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배경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해 온 민주화운동의 긴 시간이다.